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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시 후기
KBS PD 합격 후기
- 함민균
- 조회 : 3976
- 등록일 : 2022-12-21
1. 들어가며
- 한 귀로 흘려들어야 할 이야기
안녕하세요. 세저리 15.5기 함민균입니다. 저는 2022년 KBS 공개채용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합격했습니다. 분야는 시사교양 PD, 호남·제주권역이었습니다.
임원면접 합격 결과를 받은 건 11월 25일 금요일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저는 기수방에서 글쓰기 과제를 하다가, 너무 졸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니 합격자 발표가 났다는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언시생에서 예비 합격자로 입장이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많은 분들이 축하해줬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부담스러운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언론고시 준비 방법’을 제게 묻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생겼기 때문입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저도 스스로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운이 좋았어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지금도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대답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못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 되겠지만, 마냥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적절한 행동인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결국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KBS 시험을 준비하면서 기억나는 장면들을 글로 담았습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저도 언시생이었고, 여전히 제 능력에 확신 갖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한 귀로 흘려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2. 자소서와 이야기
- 이야기로 보여주기
세저리 입학 첫 날인 8월 29일, 저는 기수방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KBS 자소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며칠째 한 문항 때문에 곤혹스러웠습니다. 바로 핵심 역량을 묻는 문항이었습니다. 무엇을 핵심 역량으로 내세울지, 핵심 역량이라고 납득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구성의 원칙’을 핵심 역량으로 내세웠습니다. 현직 PD들이 본다면 납득하기 힘들 내용입니다. 리스크가 큰 시도인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방송사에서 일하면서 구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은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이야기로 보여주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핵심 역량인지, 아닌지는 면접 때 입증해야겠지만요.
※ 프로그램기획구성론 강의 첫 시간, 박진홍 교수님께서는 “피상적인 것만큼 공허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령, 지원 동기를 이야기할 때 ‘방송을 좋아했다’, ‘사람과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설명할 때, 항상 적합한 이야기를 갖추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필기, 면접에서도 나를 보여줄 이야기는 필요합니다.
3. 난감했던 필기시험
- 기본에 충실하기
시험지를 받고 논제를 읽다 보니 2021년 KBS 논술 시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논제가 나왔고,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험 당시에 저는 논술 준비를 제대로 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시험의 본질은 똑같았습니다. 현상/현안을 파악하고, 지식을 통해 재해석/추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추론 결과를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해야 합니다.
준비한 내용이 없어서 즉석에서 새 글을 썼습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봤던 책과 영화가 도움이 됐습니다. 김영민 교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을 지식으로 활용했고, 영화 <동주>를 보면서 알게 된 윤동주의 모습을 기획에 반영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새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글의 품질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측할 수 없는 논제였기 때문에 다른 응시자들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클리셰하더라도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습니다. 가능하면 쉽게 썼고, 글의 흐름이 명확하게 보이도록 애썼습니다.
※ 필기에 관해서는 제가 유독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안수찬 교수님께서는 <저널리즘 글쓰기> 시간에 ‘80점 이상이면 운 좋게 필기 통과를 노려볼 수 있을 만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논술은 매번 80점 안팎이었습니다. 그나마 글의 흐름(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이 보였을 때, 80점을 넘겼던 것 같습니다. 필기 통과 확률을 높이려면 거창한 내용을 쓰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글을 쓰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4. 기획과 구성
- PD 관점 유지하기
실무능력평가를 준비할 때, 저는 <프로그램기획구성론> 강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 당시 강의에서는 수강생 전원이 프로그램 모니터링 분석·보완 작업을 했는데요. 학생들이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면, 박진홍 교수님께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예를 들어,
-영상화하기 어려운 것을 잘 영상화했다고 느낀 점이 있는지?
-프레젠트(MC) 활용이 효과적이었는지?
-어떤 부분을 힘 줘서 촬영했다고 생각하는지?
-스튜디오 구성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MC들의 배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항상 제작자의 관점을 유지하며 프로그램을 보라고 조언하셨습니다. 그 연습을 계속 하다 보니, 실제 프로그램 기획안/구성안을 작성할 때도 도움이 됐습니다. 이야기 구조부터 게스트 섭외/VCR 시간/프로그램 엔딩까지, 핵심적인 부분과 디테일한 부분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5. 미지의 영역, 임원면접
- 생각 정리하기
임원면접을 준비할 때, 막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소서, KBS, 지역, 프로그램, 뉴미디어, 시사현안에 대한 질문을 전부 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민의 범위가 늘어났다고 해서 답변의 퀄리티가 낮아져서는 안 됐습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급하게 고민해낸 답변은 내용이 부실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꼬리질문이 붙으면,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게 금방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KBS 프로그램들을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내용이 자소서에 있을 때, ‘KBS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n개를 말해봐라’, ‘그 중에서 OO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분석해봐라’라는 꼬리 질문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만 무리 없이 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반적으로 준비가 미흡하다고 느껴,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만 <시사현안세미나>, <언론윤리법제연구> 강의를 따라가기 위해, 읽었던 책과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의 시간에 질문하면서 쟁점을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했던 점도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느꼈습니다. (EX. MBC의 대통령 비속어 보도, 적절한가? 원전은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가?) 모든 걸 공부할 여력이 없다면, 시사현안, 프로그램, 뉴미디어 등 일부 영역에 대한 준비라도 꾸준히 해두시는 걸 권합니다. 자신감이 없어지면 면접에서 티가 날 가능성이 높고, 실수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6. 나가며
- 하나마나한 이야기
‘이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게 제게는 참 고역이었습니다. 오히려 매번 지키지 못해 좌절하곤 했습니다. 글에도 나와 있듯, 세저리에서 와서 교수님들과 주변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태도는 역량으로 귀결된다고 믿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더 묻고 싶은 게 있다면 편히 연락 주세요.
제 메일은 ham9297@naver.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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