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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통나무를 놓아버린 박동주
- 통나무 제공자
- 조회 : 1048
- 등록일 : 2024-08-01
박동주의 이름 뒤에 붙는 직함은 많았습니다. 단비뉴스 청년부장이었고 편집기획팀장이었으며 편집국장이었습니다.
그가 새로운 직함을 받았습니다. 쿠키뉴스 기자입니다.
쿠키뉴스는 국민일보 계열 언론사이자, 모기업보다 디지털 혁신에 더 열성인 젊은 매체입니다. 심층탐사보도에 관심이 높은 언론이어서 예전부터 나도 눈여겨보던 곳입니다.
그 쿠키뉴스가 경제부 경력 기자 채용 공고를 냈는데(미경력자도 지원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경력 기자들만 지원한 것으로 압니다),
다른 수많은 기성 언론의 경력 기자들을 제치고, 박동주가 합격했습니다. 신참이라는 것을 알고도, 경력 기자들보다 낫다고 판단하여, 단독 채용한 것입니다.
경력 채용에 응시한 박동주, 신참을 경력 기자 자리에 채용한 쿠키뉴스,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의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아주 기뻤습니다.
박동주가 언론사에 합격했는지는 두번째 문제이고, 입학 초기의 사건을 이제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시절을 막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시시콜콜 다 밝힐 수는 없겠고...
여튼, 입학 직후 면담에서 박동주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 몰골로 내 연구실을 나가는 바람에 다른 학생들이 복도에서 박동주의 충혈된 눈을 다 보았습니다. 이후 '안쌤 연구실에서 면담하면 울고 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 눈물 흘리기 직전, 내가 박동주에게 한 말이 있긴 했습니다. 여차저차 살아온 바를 설명하는 박동주에게 말했습니다.
"급류에 휩쓸리고, 갈 곳은 모르겠고, 힘이 빠져 헤엄도 칠 수 없을 때, 일단 근처의 통나무라도 잡아야 한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생각하지 말고, 당분간 그 통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그 통나무를 놓아버릴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미련없이 통나무를 놓아라. 물론 지푸라기인지 통나무인지 구분은 해야지. 지푸라기는 붙들면 안되겠지. 세저리는 지금 너의 유일한 통나무다. 일단 꽉 잡아라."
비유가 유치했던 것인지, 통나무를 원래 싫어했던 것인지, 어느 대목에서 눈물샘이 자극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박동주는 '연구실에서 울었던 일을 절대로 유포하지 마시라'고 나를 위협했고, 지금까진 그 위협에 순응했습니다. 이제 통나무를 놓고 스스로 헤엄치고 있으니, 그때의 박동주를 기록해 둡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8월 1일부터 출근이라고 들었습니다. 출근 직전 주말에 세저리 시절을 돌아보는 글을 박동주가 보내왔습니다. 각자의 통나무를 붙들고 있는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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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5기 박동주입니다. 8월부로 쿠키뉴스 경제부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2월 졸업했으니 졸업 6개월 만에 취업이 된 셈입니다. 기자가 못 되겠구나 싶었는데 다음 주가 출근이네요…
저는 2022년 3월에 세저리에 입학했고, 같은해 여름방학부터 총 스무 곳 조금 넘는 회사에 원서를 썼습니다. 돌아보면 떨어진 기억이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크게 뼈아픈 기억은 없습니다. 애초 소위 고차(3차 이상)까지 간 적이 적기도 하지만, 제가 안쌤 말씀을 잘 듣거든요. "어차피 안 될 거야, 일단 원서 써!"이런 말도 들었고, 자소서도 보여드렸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으니 안 되면 교수님 말씀대로 된 거였습니다. 제 탈락이 아무튼 100% 제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달까… 좀 배은망덕하지만 교수님과 책임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면 심간이 편안해져서 떨어져도 회복이 빨랐습니다.
#(박동주가 직접 제공한 내용을 살짝 윤문한 사진설명)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메인디쉬 삼아 하얀 쌀밥을 먹다가 취재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곧바로 식음을 중단하고 취재에 집중하는 박동주 기자
세저리라는 둥지 덕에 안락하게 준비했습니다. 취준생이라기보다 학생처럼 살았어요.
졸업하고 알게 된 건데, 취준생은 채용 공고가 안 뜨면 할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놀 수도 없고요. 작년 이맘때 공채 뜬 회사들 찾아보고 모 회사 언제 채용 뜨냐고 아랑에 질문글 올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죠. 물론 미리 준비할 수도 있는데, 공고 없을 땐 마음이 불안해서 잘 안 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는 세저리 덕에 다른 할일이 많았어요. 발제도 해야 하고 기사도 써야 하고 스터디도 해야 하고, 단비뉴스 기자로서의 생활은 내가 모 회사 떨어졌어도 지속되는 거니까 취준생의 비애를 덜 겪었어요.
전반적으로 너무 세저리 찬양론 같은데… 그게 아니라 제가 세저리 말고 다른 방법을 몰라요.
저는 미디어 전공도 아니고 주위에 기자도 없었어요. 심리학과를 나와 뇌과학 분야를 기웃거리다 세저리로 왔고, 언시 준비라고는 세저리에서 수업 듣고 단비뉴스 활동 하고 교수님들 지도 받으며 스터디한 게 다였습니다. 그런 제가 기자 명함을 파는 건 100% 세저리 교수님들과 세저리를 함께 다닌 동료들 덕입니다.
#(박동주가 직접 제공한 내용을 살짝 윤문한 사진설명) 학교 지원을 받아 태국 기획취재를 벌이다가, 현지에서 인터뷰한 취재원과 좋은 라포를 형성하여 그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 다음 취재 현장까지 (무료로) 신속하게 이동하면서, 다음 인터뷰를 머리 속으로 구상중인 박동주 기자
제쌤의 경제사회토론 수업에서 세금과 금리, 부채에 관해 꼼꼼히 발제하고 토론하면서 경제 분야에 내가 관심이 있구나, 처음으로 생각했는데 경제부 기자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빚으로 지은 집>을 읽으며 얼마나 재밌었던지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경제 분야 보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을 거예요.
또, 석쌤의 언론윤리 수업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기자를 활동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세저리 면접을 볼 때만 해도 기자를 정의감에 차 불의와 싸우는 직업쯤으로 여겼거든요. 객관성과 공익성의 두 기둥을 세워주신 덕에 기자의 역할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학기에 더해 올해까지 제 기사를 지도해 주신 안쌤, 불퉁한 성격의 저를 때론 채찍질하고 때론 당근을 주며 조금씩 이끌어주신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감도 안 잡혀요. 좋은 기사 쓰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멋진 교수님들을 보며 매일매일 조금씩 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늘 교수님들을 닮고 싶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박동주가 직접 제공한 내용을 살짝 윤문한 사진설명) 쿠키뉴스 합격의 기쁨을 표현할 사진 자료가 마땅치 않아, 시기불명의 어느 날, (생애 처음으로) 지역 언론사 최종 면접에 오라는 통보를 받고, 당시 세저리 동기와 얼싸안고 웃는 듯 울고 있는 박동주 기자. (물론 낙방했으나, '나도 최종 면접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처음 갖게 된 사건이라는 면에서 이번 최종 합격의 기쁨을 표현하는 대체 사진으로 제공한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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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더하여, 박동주는 쿠키뉴스 최종 면접 때 나눈 질의-응답을 복기하여 나에게 보내왔습니다.
그것도 모두 공개할 수는 없군요. 몇가지 포인트만 짚자면...
1. (경력기자 채용이라서 요구한 것 같은데) 면접 이전에 '포트폴리오 기사'로 약국 분석 기사, 막걸리 기획기사, CGV 1회 기사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세 기사는 각각 지리정보 분석, 데이터 분석을 가미한 현장 르포, 현안을 분석한 심층 스트레이트 등의 '서로 다른 성격의 품질 좋은 기사'입니다.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최고의 증거입니다.
2. 면접에서는 사전 제출한 기사와 관련한 질문이 많았더군요. 취재보도 역량을 검증하려는 것이었겠지요. 또한, '데이터 취재 말고 사람 취재도 가능한지' 묻는 질문도 있었답니다. 박동주는 이렇게 답했답니다. "데이터 분석 기사라고 해도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해야 기사가 완성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하는 취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은 시나리오를 외워서 나오지 않습니다. 심신에 녹아든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현답입니다.
자료, 숫자, 현장, 사람을 종횡무진 누비는 박동주 기자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강, 건투, 건필할 것을 믿습니다. 그가 붙들었던 통나무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의 손을 거치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앞으로 박동주 기자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통나무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