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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수습PD가 되고 보니...“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

  • 저* *
  • 조회 : 409
  • 등록일 :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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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연락도 잘 하지 않던 양진국 씨가 PD 됐다고 인사하고 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습 교육 받는다고 무척 바쁘답니다. 하지만 MBC경남에서 수습PD로 바쁘게 교육을 받는 와중에도 자신의 세저리 생활, 나아가 20대를 마무리하는 글을 공들여 보내왔습니다.

 

항상 듬직하게, 장비 관리를 위해 애를 쓰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조만간 화제의 작품을 소개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ps. 참고로 저는, 20대나 30대만 불안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안쌤은 30대 이후로는 불안을 극복한 모양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나이가 들어도 무언가 불안을 안고 삽니다. 청년기를 지나면 그게 그냥 삶의 일부가 되어서 그렇거니 하고 살 뿐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불안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일 수도 있겠죠? 불안 속에서 변화가 생기고, 발전이든 뭐든 새로움도 생기니까요. 무엇보다도, 항상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PD에게는 이런 불안감이 엄청난 자산이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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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20대 혹은 30대는 불안하다.

자신이 특별히 늦은 건 아닐까, 아니면 빠른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기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과거에 내가 어떠했다가 아닌, 앞으로 무엇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게 아닌,

잘 살고 있다는 건 오늘을 내 호흡으로 살아가는 걸 말한다.“

 

어느 날 몇 잔의 술을 곁들인 안쌤이 회식 자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대개 안쌤의 술자리 말을 이렇게 잘(?) 기억하진 않지만...이 말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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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손질 중...)


세저리 입학 전, 저의 20대는 늘 불안함이었습니다. 일과 공부는 도전했지만, 삶은 끝없이 주저했습니다. 언론고시라 불리는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실력이 될까. PD가 못 되면 어떡하지. PD, 언론인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주저와 고민의 끝에는 언제나 불안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세저리에 와야겠다고 다짐했던 건 한 발자국의 용기였습니다. 대학에서 친구들과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라져가는 골목과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주와도 같았습니다. 사라지기보단 드러나기를, 남아있기보단 공유되기를 바랐습니다. 마음은 온통 이런 사람들을 마주하길 바라는데, 제 불안이 PD가 되려는 의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딱 한 발자국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좋은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제대로 준비를 해보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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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쌤과 미콘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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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쌤과 16PD들)


세저리 생활은 기본기를 쌓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하나의 언론인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저널리즘스쿨 출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혹독한 편이긴 합니다. 특히 처음 두 학기는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매일 신문도 읽고 수업과 발제 및 취재를 하는 반복의 연속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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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신문을 정리했던 노트 4권과 취재수첩)


저는 첫 학기 화요일에는 동기 준영이와 밤마다 401호에 남았습니다. 수요일에 있는 박쌤과의 부서 회의를 통과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논문을 뒤지고 자료를 조사하고 기존 프로그램들을 분석하며 기획안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기획의도를 작성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습니다.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한심하게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PD가 되는 길에 디딤돌이 된 것 같습니다. 회사에 들어온 뒤 부장으로부터 들은 말도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시청자도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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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닐 인터뷰 촬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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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여러모로 개인적인 애정을 느낀 영상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MZ세대 분석 콘텐츠에선 디테일한 분석과 새로운 기법을 활용해 보기도 했고, 화면해설사 콘텐츠에선 제가 볼 수 없던 세상을 만났고, 인생교향곡 콘텐츠에선 휴먼 다큐를 경험했으며, 아브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쏟아부으며 노력했던 순간을 기억에 남겼습니다.

 

주제넘은 말이지만, 많은 영상물과 기사들을 남기셨으면 합니다. 물론 세저리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도, 운이 좋아서, 아니면 원래 필기 통과가 잘 되어서, 면접 등의 실무 평가에서 여러 요소들이 잘 적용되어서 언론사에 합격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운과 두뇌의 명석함으로만 일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10년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러더라고요. 그 기한을 넘어서려면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물론 저도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저는 그 자질이 세저리에서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얻어가는 숱한 경험과 결과물들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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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닐 프리뷰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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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중이라 널브러진 책상)


또 미디어콘텐츠부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장비를 관리하고 운용해보는 것, 동료들과의 협업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는 기사 작성을 위해 빠르게 아이템을 발전시키고 취재해 나가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힘은 들었어도 지나고 보면 가장 빠르게 이것저것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았습니다. 여러 부서를 경험해보고, 할 수 있다면 부장 역시 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부딪히고 상처도 주고 받고 화해도 하면서 더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세저리 생활이 좋았습니다. 당연히 힘들고 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하고,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위트있게 2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도 많았고, 습득한 것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삶이 어떻게 흘러간다해도 함께 버텨나갈 수 있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된 것, 그런 애정을 느끼는 동료들이 남았다는 사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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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에 매달린 안쌤을 밀고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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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기 단체 사진)


글 마지막에서야 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이런 두서없고 막연한 글을 쓴 저는 서른 살에 PD가 되었고, 세저리 2년을 보내고 졸업 후 8개월을 더 공부한 뒤에 PD가 되었고, 8번의 최종면접과 6번의 최종 탈락을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른 김장하> <엄마의 말뚝> <김밥의 천국>으로 유명한 좋은 선배들이 있는 MBC경남에서 수습 PD로 지내는 16기 양진국입니다. 마지막에서야 제 소개를 하는 건 이 글을 읽는 모든 제 또래와 동료들, 불안감을 안고 있을 여러분에게 저 역시 똑같은 불안을 가진 채 살았던 당신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자잘하고 구체적인 언시 공부의 기록이나 방법이 궁금할 때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끝으로 수없는 주저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응원하고 싶습니다. 한 발자국만, 안 된다면 반 발자국만 용기를 내어 봅시다.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가 서 있는 경계를 넓혀 우리 세대가 바라는 세상을 말하는 언론인이 되어 봅시다.

 

많은 도움을 주신 제쌤, 박쌤, 안쌤, 석쌤, 은쌤, 민식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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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2
naver -   2025-11-25 22:25:09
연락은 어디로 드리면 될까여 16기의 자랑 양 pd를 응원합니다
naver -   2025-11-26 11:42:54
양피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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