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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이대로 바보가 될 수는 없어
- 저* *
- 조회 : 9
- 등록일 : 2026-07-07
현업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기자 준비할 때가 가장 똑똑했다.”
확실히 기자를 준비할 때를 돌아보면, 그때는 모르는 게 없었습니다.
정치, 사회, 국제 등 어떤 이슈가 나와도 막힘없이 말이 나왔습니다.
기자가 되고 나니 점점 바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진짜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비슷한 템플릿의 기사,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들...
이대로 늙으면 나는 무엇이 될까. 그 때 가서 스스로를 기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쁜 기자도 기자인가. 이런 생각들이 꼬꼬무로 이어집니다.

위기감을 느낀 세 명의 기자가 모였습니다.
세저리에는 ‘인턴현장실습’ 수업이라는 AS가 있습니다.
배테랑 경제 기자 출신이자 국내 최고의 저널리즘 교육 전문가, 제정임 교수님이 직접 AS를 하십니다.
놀랍게도 이날 모인 세 명의 기자 모두 경제지에 재직 중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수업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각자 두 개의 기사를 제출했고, 교수님은 모든 기사를 무참히 박살냈습니다.
“내가 너네들을 이렇게 가르쳤니?”
아무도 물음에 답을 못했습니다. 교수님도, 3명의 기자도 울었습니다. 모두들 눈물을 빗물에 가렸습니다.

F 매체에 다니는 박 기자는 ‘사쓰 기자’입니다.
사회부에서 사건 기사를 씁니다. 박 기자의 장점은 아이템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는 겁니다.
누구나 느끼지만 콕 집어 말하지 못하는 걸 잡아냅니다.
흥미롭고 깔끔한 기사도 교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교수님은 칭찬 10%와 지적 90%를 전했습니다. 용감한 박 기자도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국내 기사들은 대체로 템플릿이 있습니다.
현장감을 주려면 리드 문장은 인용으로. 두 번째 문단은 “~에 따르면”. 마지막 문단에는 전문가 멘트. 이래저래 정말 많습니다.
잘 활용하면 깔끔한 기사, 과하게 활용하면 원재료를 망칩니다.

T 매체에 다니는 정 기자는 산업부 기자입니다. 주로 자동차 산업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정 기자는 수업 시작과 함께 “매서운 피드백을 달라”고 했습니다.
10분 뒤, 아마 정 기자는 후회했을 겁니다.
언제나 학생 말을 잘 들어주시는 교수님은 정말 사정없이 팼습니다.
그냥 방망이로 패는 게 더 나았을 거 같습니다.
나긋한 말투로 기사를 계속 지적하는데, 괜히 옆자리에 있는 제가 엎드려뻗쳐야 할 거 같더군요.
기사는 쉽게 써야 합니다. 전문지라고 전문가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제정임 교수님의 유명한 ‘김밥 아주머니 이론’이 있습니다.
평생 김밥만 만든 아주머니도 기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사를 쉽게 쓰려면 기자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M 매체에 다니는 최 기자는 과학부 기자입니다.
최 기자는 피드백 받을 기사를 고를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난 학기에도 교수님한테 “과학 전공한 거 자랑하냐. 기사 좀 쉽게 써라”는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심 끝에 제출한 기사에 교수님은 “지난 학기보다는 낫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네가 한 학기만 세저리를 더 다니고 기자가 됐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표했습니다.
칠삭둥이를 낳은 어머니의 마음일까요. 불효자인 최 기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기사에 담기는 묘사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독자가 기사를 읽으면서 시각화할 수 있어야 좋은 기사입니다.
기자는 현장에서 모든 세세한 것들을 잡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묘사가 나옵니다.
기사에는 개요가 아니라 현장을 담아야 합니다.

업무 시간에 선배한테 왕창 깨지고, 저녁 자리에서 술로 푸는 건 한국 언론계의 오래된 전통입니다.
교수님과 3명의 기자는 순대국집으로 향했습니다.
순대국밥과 순대에 약간의 음주를 곁들였습니다. 매우 ‘기자스러운’ 메뉴입니다.
최근 언론 산업의 동향, 기자 커리어 설계, 현장에서의 고민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하지만 앞선 수업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몸에서 빠진 수분만큼을 알코올과 순대국으로 채워넣기에 바빴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