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단비뉴스 편집실
류성룡의 리더십이 지금 절실한 이유
- 양승희
- 조회 : 5783
- 등록일 : 2012-11-12
| 류성룡의 리더십이 지금 절실한 이유 |
|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장승구 세명대 교수 주제②: 서애 류성룡의 재인식 |
| ||||||
|
1598년(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 새벽 2시, 노량 관음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은 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류성룡이 영의정에서 파직돼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순신은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던 것일까? 이순신과 류성룡은 어떤 관계였을까?
장승구 세명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서애 류성룡의 재인식’을 주제로 강의했다. 장 교수는 이순신을 알면서 류성룡은 잘 모르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을 발탁해 최전방의 요직을 맡기는가 하면 전쟁이 터지자 영의정과 도체찰사로서 동양3국의 국제전을 잘 이끌어 조선에 승리를 안긴 난세의 정치인이었다. <징비록>(懲毖錄)은 그가 겪은 임진왜란의 기록서이다. 장 교수는 류성룡이 뛰어난 학자이자 리더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강의하면서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을 ‘위대한 만남’이라 표현했다. 1542년에 태어난 류성룡은 이순신보다 세 살이 많을 뿐이었다. “이순신과 류성룡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잘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이순신은 류성룡을 굉장히 존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순신이 신경을 써서 쓴 편지가 있는데 수신자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류성룡일 가능성이 큽니다. 임진왜란 직전에 서애는 이순신을 7계급이나 특진시켜 전라좌수사로 임명합니다. 그는 전쟁에 대비하라고 이순신에게 책도 많이 줍니다. 최신 병법서 같은 것들이죠.” | ||||||
hgyang1024@naver.com